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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 선생의 삶과 나눔, 진정한 어른의 길을 걷다

김장하 선생


김장하 선생은 경남 진주에서 60여 년간 ‘남성당한약방’을 운영하며 평생을 지역사회와 이웃을 위해 헌신한 대표적인 어른입니다. 그의 삶은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이나 명예와는 거리가 멀지만, 묵묵히 실천한 나눔과 연대의 행보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한약방을 운영하며 번 돈으로 1983년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했고, 1991년에는 이 학교를 국가에 아무 조건 없이 기부채납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등록금뿐 아니라 하숙비, 생활비까지 남몰래 지원해왔으며, 그 규모는 1,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장하 선생은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 되겠다”는 신념으로 장학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기부와 지원은 교육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진주 지역의 언론사, 여성, 장애인, 다문화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위한 형평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진주가정폭력상담소 후원, 호주제 폐지 운동, 진주오광대 복원, 진주문화연구소의 책 발간 지원 등 다양한 문화·예술·인권 활동에 힘을 보탰습니다. 또한, 경상국립대 후원회장,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진주지부 이사장, 지리산생명연대 공동대표 등 여러 단체에서 봉사와 후원을 이어왔습니다.

김장하 선생의 삶의 철학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즉 “기대 없이 베푸는 것”에 있습니다. 그는 “돈은 똥과 같아서 한 곳에 모이면 악취가 나지만, 여러 곳에 퍼지면 거름처럼 된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기부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렸습니다. 명신고등학교를 국가에 헌납할 때도, 자신의 공적을 드러내는 모든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내가 번 돈은 세상의 병든 이들에게서 얻은 이윤이기에, 내 자신을 위해 쓰지 않겠다.”
“불교의 ‘기대 없이 베푸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줬으면 그만이지 무슨 보상을 바라나.”

그는 권력과의 타협이나 청탁에도 단호했습니다. 학교 설립 이후 교사 채용에 있어 “내 친척은 한 사람도 쓰지 않겠다”, “돈을 받고 한 사람도 채용하지 않겠다”, “권력에 굽히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실제로 국회의원의 청탁이 들어오자, 해당 교사의 채용을 무효로 하고, 이후 감사와 세무조사에도 “잘못한 게 없어서 들킬 것도 없다”며 당당하게 맞섰습니다.

김장하 선생은 1992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지만, 이마저도 교육감의 간곡한 요청에 마지못해 수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형평운동기념사업회 회장, 남명학연구후원회장, 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 영남대표 등 다양한 직책을 맡으며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2001년에는 ‘남성문화재단’을 설립해 장학금과 각종 지원을 이어갔고, 한약방 폐업을 앞두고 재단 역시 해산 절차를 밟았습니다.

그의 삶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김장하 선생을 증언하는 이들은 “선생님이 어떤 지침을 주는 게 아니라, 그냥 살아오신 그 과정 자체가 삶의 지표 같은 분”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김장하 장학생들은 사회 각계에서 활약하며, ‘교육의 힘’과 ‘선한 영향력’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김장하 선생 앞에서는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애쓰게 된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김장하 선생의 삶은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그의 조용한 실천과 나눔은 오늘날 각박해진 사회에서 진정한 어른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는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실천한 인물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진짜 어른’의 표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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