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드롬과 의혹 사이를 오가는 한국의 '산유국 꿈'
2024년 6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브리핑이 온 나라를 들끓게 했다.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가스가 동해에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발표는 마치 산유국 꿈의 실현을 예고하는 듯했다. 하지만 한 해가 지난 지금, 첫 시추 결과가 실패로 판명되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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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 계속된 꿈과 좌절의 반복
사실 한국의 석유 탐사 역사는 1959년 전남 해남 우황리에서 시작되어 65년이라는 긴 시간을 이어왔다. 그 과정에서 가장 유명한 해프닝은 197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포항 석유 발견" 발표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6년 1월 연두 기자회견에서 "작년(1975년) 12월에 영일만 부근에서 우리나라 처음으로 석유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온 국민이 환호했고, 당시 언론들은 "위대한 영도자" 찬양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이는 곧 원유가 아닌 정제된 경유로 밝혀지며 해프닝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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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뉴스1 |
액트지오 논란, 전문성에 대한 의문
이번 동해 탐사의 핵심이 된 미국 액트지오(Act-Geo)에 대한 논란도 큰 쟁점이었다. 윤 대통령이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 기술 평가 전문기업"이라고 소개한 이 회사는 사실상 텍사스 휴스턴의 한 가정집을 본사로 하는 1인 기업으로 드러났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액트지오가 한국석유공사와 계약 당시 1650달러의 법인 영업세를 체납해 법인 자격이 제한된 상태였다는 사실이다. 또한 검증 과정에서도 의혹이 제기되었는데, 해외 자문위원 중 한 명이 액트지오 소유주 비토르 아브레우 박사의 논문 공동저자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팩트체크가 밝힌 허위 주장의 실체
가장 결정적인 것은 아브레우 고문의 거짓 발언이었다. 그는 "오바마, 트럼프 대통령도 석유 매장 가능성을 직접 발표했다"고 주장했으나, JTBC 팩트체크 결과 이는 '전혀 사실 아님'으로 판정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한 것은 석유·가스 매장량 조사 공개나 자원량에 대한 발표가 아니라, 해양 시추 허가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거나 국내 생산을 늘리기 위한 임대 자원 평가 가속화 상황 브리핑이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집권 전까지 자원 탐사가 제한되었던 지역의 석유·가스 탐사와 시추를 허용한다는 내용을 발표했을 뿐이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쓴맛
2024년 12월 20일 시작된 '대왕고래 프로젝트' 첫 시추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정부는 2025년 2월 6일 "가스의 징후는 발견했으나 경제성을 확보할 수준은 아니었다"고 발표했다.
마귀상어, 새로운 희망인가 새로운 환상인가
대왕고래 프로젝트 실패 후, 액트지오는 2025년 2월 추가로 최대 51억 7000만 배럴 규모의 석유·가스가 매장된 14개의 유망구조를 발견했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중 하나가 '마귀상어'(Goblin Shark)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정부와 석유공사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직 정밀 검증을 거치지 않은 단계"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으며, 전문가 검증 절차를 거쳐 3월 안에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현실과 꿈 사이에서
한국의 석유 개발 역사를 보면 성과도 있었다. 1998년 울산 앞바다에서 발견된 동해 가스전은 2004년부터 2021년까지 약 4500만 배럴의 가스를 생산하며 17년간 운영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 개발 초기 기대에는 못 미치는 성과였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석유 탐사가 동해에만 집중되어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서해와 남해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받고 있는 반면, 중국은 이미 서해와 맞붙은 장수분지에서 경제성 있는 유가스전을 발견했다.
그럼에도 계속되어야 할 탐사
비록 첫 시추가 실패했지만, 전문가들은 탐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석유 탐사는 본질적으로 높은 실패율을 가진 사업이며, 가이아나 리자 프로젝트도 초기 성공 가능성이 16%에 불과했다.
중요한 것은 투명성과 객관성이다. 정부는 이번 과장 발표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 사과하며 "결과적으로 죄송하다"고 밝혔다. 앞으로는 해외 메이저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해 리스크를 분산하고, 더욱 신중하고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마무리: 꿈은 계속되지만 현실도 직시해야
한국의 산유국 꿈은 65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었지만, 완전히 포기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과장된 기대나 정치적 이용은 경계해야 한다.
마귀상어라는 새로운 이름의 유망구조가 진짜 희망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환상에 그칠지는 앞으로의 검증 과정에 달려 있다. 중요한 것은 과학적 근거와 투명한 정보 공개, 그리고 국민들의 냉정한 판단이다. 꿈을 꾸되 현실을 직시하는 자세, 그것이 진정한 에너지 자립을 향한 첫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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